오랜만에 글을 쓴다. 미국에 온지 2년 반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한국에는 두 번 갔었고, 3년차 봄학기를 시작했다.
2023년을 정말 힘들게 보냈다. 1학년 퀄 준비하던 때보다 더 어려웠던 한 해 였다.
작년 5월 comprehensive exam을 마쳤다.
내가 속해있는 학교에서는 입학 3년 이내로 comprehensive exam (종합시험)을 봐야지 박사후보생 자격이 된다. 보통 3학년 가을학기에 치른다. 1학년때 보는 qualifying exam 이랑은 다르게 내 세부전공에 맞춰서 내 지도교수님이 직접 나만을 위해 내는 시험이다.
주제도 모르고 욕심쟁이인 나는 2년차 여름방학을 맞기 전에 시험을 끝내고 싶었고, 지도교수님도 흔쾌히 동의를 했고, 시험직전까지 나는 준비가 덜 된 것 같은데, 하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냈다. 시험이 끝나면 모든 게 괜찮아 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시험에 통과를 했다.
시험이 끝나고 나와서 집에 오는 길. 온갖 감정을 한꺼번에 느꼈다. 다시는 내 인생에 시험이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 허탈함,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두려움, 정말 패스할 자격이 있던 건지 걱정. 공허함,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건지,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나인데, 나라는게 과연 "연구" 라는 것을 할 수 있는 건지. 내가 공부하는 분야를 이해할 사람은 고작 몇 백명 뿐일텐데, 의미가 있는 공부인지. 공부, 연구의 목적이 뭔지. 이 작은 분야도 잘 못하는 내가 수학계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
여전히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의미가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재밌으니까… 밖에 답이 없는데, 이것만으로 박사과정을 이어가는데 충분한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가끔은 싫증이 나고 재미가 없어지거든.
시험이 끝나고 2주 정도 지난 후에, 교수님이 드디어 나의 첫 프로젝트를 줬다.
잘 풀리기만 한다면 내 이름 단독으로 논문을 쓸 수 있는, 나만의 프로젝트.
설렜다. 잘 하고 싶었다. 무서웠다.
교수님이 읽기 시작하라고 준 논문, 전체도 아니고 첫 15페이지 정도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두 달 정도 걸렸다. 잘 하려는 욕심에,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세세한 부분에 집중을 해서 모든 문장들을 이해하려했다. 시간이 오래걸린 만큼 많이 지치기도 했다. 한 페이지를 하루종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자책한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그래도 이제는 그 논문은 마스터한 느낌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며 내 언어로 정리를 하며 교수님에게 자질구레한 질문들을 하며 겨우 겨우.
하지만 내가 연구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직도 의심이 간다.
아직 내가 원하던 결과를 이루어내지 못했고, 이 주제가 잘 풀릴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다.
이게 공부랑 연구의 가장 큰 차이점 아닐까.
공부는 답이 있다. 책이 있다.
연구는 답이 없다. 딱 내가 원하는 것만 필요한 것만 모아 놓은 책이 없다. 논문들을 읽어야한다. 논문마다 가정하는 내용, 표기방법도 다르고 나의 필요에 맞게 논문 전체를 또는 몇 몇 이론들 혹은 증명하는데 쓰이는 아이디어들만 쏙쏙 뽑아서 읽어야한다. 어떤 게 중요한지 감을 익히는 데도 시간이 아주 오래걸린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문제가 맞을지 틀릴지도 모른다. 뭐 하나를 증명하고 싶어도 내가 증명하려는게 과연 맞는 말일지 확신이 없어서 중간에 막히면 갈 곳을 잃는다.
이제는 논문 읽는 거에 대한 거부감은 많이 없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아직도 진정한 연구자가 되려면 갈 길이 멀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너무 막막했는데, 이제 돌아보니 꽤 많은 논문들을 읽었고, 꽤 많은 것들을 이뤄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 새 성장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연구, 공부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길게, 멀리 보라는 것이다. 오늘 같은 페이지만 쳐다보고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것 같아도, 한 달 전의 나는 이걸 쳐다도 보지 못했을 거야. 일 년 전의 나보다 이거를 이만큼이나 했네, 하고 나의 길고 작은 성취들을 축하해줘야 앞으로 더 계속 할 맛이 난다. 이번주 아무것도 써내려가지 못 한 것같아도, 오늘 한 고민들이 모아지고 모아져서, 천천히라도 언젠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여 줘야 한다. 당연히 힘들다. 재미없고 싫증나는 순간들이 당연히 온다. 하지만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 잠깐이라도 있다면,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구가 하루만에 완성 되는 거라면 재미가 더 없을걸? 어려운만큼 재미도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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