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블로그 글 중 놀랍게도 조회수와 좋아요 수가 가장 많은 글이 낭만 그리고 현실. 그렇게 힘들까? 이다.
유학 오려는 사람들이 걱정이 되서 찾아보는 건지, 유학 와 있는 사람들이 공감이 되어 찾아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싶어 이 글을 쓴지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내 미국생활을 돌아보려 한다.
미국에 온지 3년이 되어간다. 세번째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고, 곧 있으면 4년차가 된다. 2년만 더 있으면 졸업이라는게 실감이 안 난다. 벌써 박사과정의 반을 넘겼다니! 뿌듯하기도 하면서도 과연 2년 안에 졸업을 할 수 있을지, 졸업 후 어디를 가게 될지, 지도교수님 없이 홀로 설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참고로 나는 아주아주 overthinker고.. ♡Anxiety♡는 내 동반자다.)))
2년전 내가 써놓은 글을 다시 읽어보니, 몇 몇 항목은 이제 적응이 되어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3년째 살다보니 이 동네 날씨에도 적응을 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엔 포기를 해버려서 이제는 딱히 떠오르는 한국 음식도 없다. (햄버거랑 피자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영어도 이제 많이 편해져서 생각이나 혼잣말 조차도 영어로 해버린다. 영어로 영화보거나 책을 읽는 게 예전만큼 힘들지 않다.
하지만 가족이 그리운 것, 일이 안 풀릴 때마다 다 그만두고 한국으로 도망가버리고 싶은 것은 여전하다.
이 외에 미국에서 유학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건, 죄책감, 혼자 있는것, 그리고 공부다.
죄책감
이건 개인 성향에 따라 많이 다를 것 같다. 최근 1년간 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이 죄책감 같다. 사실 죄책감이 맞는 단어인지도 잘 모르겠다.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나 꿈 이루겠다고 가족 다 버리고 와서, 하고싶은 거 다 하면서 사니까 행복해야 맞는 건데 , 왜 행복하지 않지? 나 여기서 뭐하는 거지?"
내가 과연 좋은 딸일까? 좋은 언니/누나 일까? 좋은 학생인가? 좋은 친구일까? 수학을 잘하는 거긴 하는 걸까? 나 자신한테도 좋은 사람이지 못 하는데, 이 욕심을 부리고 여기 있는게 맞는 일일까? 연구도 잘 안 되는데 나 뭐하는 거지. 하는 생각.
긴 여름방학, 한국을 가려면 내 고양이를 뒤로 남긴채 최소 한 달은 있게 되고, 가있는 동안 공부도 미팅도 하기 어렵다. 겨우 안정적이 된 내 미국 생활을 멈춘채 가려니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쉬러 가는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아? 할 수도 있는데, 오랜만에 한국가는데, 그동안 못 만난 사람들 만나고, 못 가본데 가고, 가족들이랑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내는 건 혼자 사는 거에 적응한 집순이인 나에게 딱히 쉼이 아니다.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 다시 느끼게 될 슬픔과 미안함이 무서워서 한국에 가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런생각을 하는 것 조차 가족에게 미안하다. 나쁜 딸같다는 죄책감이 든다.
공부가 잘 되지 않는 날, 공부가 잘 되는 날, 행복한 날, 슬픈 날, 친구들이랑 노는 날, 아무것도 못 하고 집에서 쉰 날, 여행을 가는날, 가족에게 안 좋은 일이 있는 날, 가족 생일, 명절.. 모든 날이 죄책감으로 가득하다. 이런 감정이 건강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덜어내기 어렵지 않다. 죄책감이 더 열심히 살려는 동기로 바뀔 수 있게 노력하는 중이다.
혼자 살아 남기
뭘 하든 혼자다. 우리 지도교수님 밑에 나 말고 다른 한 명 밖에 없고, 친한 친구들이랑 공부하는 세부 분야가 다르다 보니 같이 듣는 수업/세미나도 줄어든다. 친구들을 학교에서 보는 날이 줄어들었다. 학교 친구들도 다들 여친/남친이 생기고 생활이 1년차 때보다 안정적이 되서, 학교밖에서도 크게 모이는 일이 줄어들었다. 나도 고양이를 키우다 보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난 2월 동생이 와서 나랑 함께 한 달 머물다 갔는데, 동생이 가고 나니 혼자 밥을 차려먹는게 너무 어려워졌었다. 미국에 온 후로 "생존모드"로 지내느라 혼자인걸 딱히 실감한 적이 없는데, 동생이 가고 나니 갑자기 혼자 인게 서러워졌다.
얼마 전 먼(사이는 가까웠던) 친척 한 분이 홀로 돌아가셨다. 젊은 나이에 혼자 지병이 있어 앓고 계셨던 것도 아무도 몰랐고, 오랜만에 여러 친척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은 후 다음 날 아침 돌아가셨다. 가족 모두에게 충격이었는데, 이 와중에 엄마는 내 걱정이 되었나 보다. 평소 무뚝뚝한 엄마가 전화가 와서는 내가 미국에서 그 분 처럼 혼자 조용히 죽을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하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학교 안 가는 날 갑자기 내가 쓰러지거나 죽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와 단 둘이 혼자 있는 시간을 매우 즐기는 나도, 가끔은 이 먼 타국에서 혼자인게 무서워진다.
내 연구는 (내 주변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 내 지도교수님 밖에 없다. 같은 지도교수님밑에 친구랑도 아주 세밀하게는 다른 분야를 해서 서로 무슨 공부를 하는지 감은 잡지만, 매주 만나 같이 공부도 하지만, 내 프로젝트가 뭐가 어떻게 진행 되고 있는 지 딱히 상세히 얘기할 사람이 없다. 물론 교수님이랑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질문을 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는 있지만 결국은 내 결과를 얻기 위해 나 혼자 씨름해야 한다.
공부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위에 말한 것처럼 혼자 애써야 하는 거 말고도 박사 과정 너무 너무 어렵다. 이제 코스웍도 다 끝나서 수업도 거의 안 듣고, 티칭, 미팅, 세미나가 내 스케쥴의 주를 이룬다. 빈 시간이 많다. 빈 시간이 많으면 공부를 더 많이 할 줄 알았다. 그건 또 아니더라.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배우는 것의 속도가 줄어든다.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다른 글에 연구에 대해 쓴 대로 답이 없는/모르는 문제를 고민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페이퍼에 단순히 Lemma 로 표현될 하나의 부등식을 증명하는데 두 달이나 보냈다. 아직도 내가 최종적으로 증명하려는 거에 가깝지 않아서 과연 이게 의미 있는 부등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알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카페 알바 같은 단순 노동이 너무 그립다. 산을 넘으면 또 더 큰 산이 계속해서 나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과연 공부를 좋아하긴 하는 걸까 하는 의심이 계속해서 든다. 아침에 눈 떠서 부터 밤에 눈 감기 전까지 책상에 앉아있지 않더라도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수학이 떠돌아 다닌다. 머릿속의 이 흐름을 멈출 수 없다. 때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학교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방학을 길게 가지니까 부럽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럼 뭐하나. 방학이 방학이 아닌데. 내 머리는 퇴근이랄게 없는데.
앞서 너무 불평 불만만 한 것 같아 좋은 이야기를 좀 써볼까한다. 졸려오는데 공부 더 해야하니까 간단히.
미국 유학오면 좋은 게 뭐가 있을까?
1. 학회 : 미국 학생 신분으로 각종 학회 무료로 참여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작년엔 유럽도 다녀왔고, 캐나다에 있는 Fields institute 가서 내 분야의 개척자도 만났다. 한국에 있었으면 세계적으로 저명한 수학자들을 만날 기회도 적을 테고, 주말 학회를 가겠다고 미국에 오기 쉽지 않았을 거다. 학회를 다니면서 다양한 수학자들을 만나고 인맥을 넓히고 비슷한 분야를 하는 다른 대학원생들이랑도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좋다.
2. 여행 : 비수기에 미국 각지로 싸게 여행을 다닐 수 있고 (국내 비행기 탈때도 여권도 없이 미국 면허증만 들고!), 운전을 해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거, 몇 시간만 가도 전혀 다른 동네가 나오는게 너무 좋다. 나는 학회를 너무 많이 다니느라 짐싸고 비행기타는거에 지쳐서 여행을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땅도 넓고 주변에 다른 나라도 많아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 접근성이 좋다는게 장점 중에 하나이다.
3. 혼자 : 혼자인게 앞에 썼다싶이 단점이기도 한데, 나에겐 너무 큰 장점이다. 조용한 내 집이 너무 평화롭다. 밤을 새건 낮잠을 자건 늦잠을 자건 아무도 모른다(쉿). 하루종일 내가 하고싶은 일만 할 수 있다. 하루종일 공부를 하든, 잠을 자든, 티비만 보든, 굶든, 온전히 내몫이다. 내 스케쥴에 영향을 끼치는건 학교와 나 자신 뿐이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져서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 도 좋다. 모든 선택권이 나에게만 있다보니 내가 어떤 걸 정말로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발견하는 재미가 있기도 하다. (ex. 난 치킨이 싫어.)
4. 영어 : 영어로 뭐든걸 다하는 내가 너무 자랑스럽다. 한국에 있을 동안 한 20년보다 3년 여기와서 사는 동안 영어가 더 많이 늘었다. 내 목표중 하나가 영어로 화내기였는데, 이거 너무 짜릿하다. 이제는 영화나 티비를 백그라운드로 틀어놓고 보면서 친구들이랑 대화를 하는거, 내 감정을 영어로 표현하는 거, 통화를 하는거 너무 당연하게 되었다. 어떤 학회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이 내가 한국에서 온 지 몇 년 안 됐다고 말하면 뭐야 나 너 미국사람인줄 알았어! 라고 하는게 너무 뿌듯하다.
5. 내가 뭘 하든 뭘 입든 노 상관 : 한국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는 경향이 강하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 항상 개썅마이웨이였긴 했지만 신경쓰이긴 했다. 내가 한겨울에 쪼리를 신던, 후질구레한 티셔츠를 입고 나가던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한국인 인 내 시선에서 이상한 사람 정말 많지만 나도 여기선 그 이상한 사람중의 하나일 뿐이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다는게 너무 좋다.
이거 말고도 한국에 있는 것보다 취업 기회도 많고 (절대 취업 쉽다는 말 아님.) 뭐 독립심을 기르고 등등 잘 알려진 뻔한 장점도 많지만 이제 여기서 글을 마쳐야지.
유학을 생각 중이라면 화이팅. 유학을 하고있는 중 이라도 화이팅!
이건 내가 그저께 찍은 일식 사진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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