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지 7개월이 되어간다. 가을학기를 끝내고 봄학기 중간 즈음에 와있다.
중간고사를 끝내고, 정말 오랜만에 급한 시험이나 과제 없이 여유로운 주말을 갖게 되서 내 지난 날들을 돌아보는 중이다. (해야할 과제 있는데 내일의 나를 믿는 중.)
박사유학. 여기 오기전, 그렇게 힘들어서 포기하고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고,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사람마다 학교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정말 포기할만큼 힘든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내 이야기를 써보려한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내게 '어때? 할만해?' 라고 물으면 당연히 나는 '재밌어, 할 만해~'라고 답한다. 정말일까?
항상 미국에서 혼자 사는 걸 꿈꿨다. 내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크고 작은 경조사 없이 일관된 삶을 사는게 안정적이고 행복하기도 하다.
큰 방해 없이, 혼자 내가 원하는 시간에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게 좋다. 자유로운 미국에서 돈을 벌면서 혼사 살아가는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자유롭게 사는 현재 내 삶이 정말 좋다.
그런데도 말하고 싶은 건, 그렇게 박사 유학을 기대하던 나에게도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여년 평생 살던 동네를 떠나서, 혼자서 언어 문화 음식 완전히 새로운 곳에 와서 사는 게 쉽다는 건 거짓말이다.
성인이 되고 (화나서 운 적 말고) 슬프거나 쓸쓸해서 운 횟수가 손에 꼽힐 정도인데, 여기 오고 나서는 그렇게 많이 울었다.
엉엉 아이같이 우는 게 아니라, 그냥 갑자기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날이 많았다.
별거 아닌 일로 가족이 그립다.
물건이나 음식을 보고, 어 이거 내 동생이 좋아하는 건데. 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가족 생각이 나기도 하고.
텅 빈 집에 들어와서 그 고요함에 싫증이 나서 울기도 한다. 항상 이런 저런 모든 얘기를 공유하고 조잘거리던 우리 가족이 너무 그립다.
공부하다가 밤 늦게 들어왔을 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놓고 나를 기다리는 엄마가 그립다. 따듯한 엄마 음식이 그립다.
가족이 날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 한다는게 너무 속상하다. 더 이상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하다.
학교일이 잘 안 풀리면 그냥 비행기표 끊어서 집에 가고 싶다.
1월에 3과목 qual시험을 봤는데, 그 중 한 과목 떨어졌다.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고 자신있어하던 과목인데, 어쩌다 보니 떨어졌다.
물론 재시험기회가 있고, 한 과목뿐이니 별 일 아닐수도 있지만, 결과를 들은 날 정말 너무 집에 가고싶었다. 내 진짜 집. 엄마랑 아빠한테 투정을 부리고 싶었는데 전화해서 투정부리면 괜찮으니까 포기하고싶으면 그냥 한국오라고 하실게 당연했다. 그럼 나 자신이 무너질게 너무 뻔해서 전화도 못 했다. 공부하다가 너무 힘이 들고 지칠 땐 여기까지 와서 내가 뭐하는 거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자주 눈물을 흘렸다.
이 두개가 내가 겪은 가장 큰 힘든 일이었다. 이 것 말고도, 내 주변 친구들을 보면..
자외선 부족, 날씨 적응, seasonal depression
멕시코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여기 겨울이 길고 해 뜨는 날이 부족해서 한동안 엄청 힘들어했다. 특히 내가 다니는 학교 동네에는 겨울동안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따듯한 동네에서 온 친구들은 겨울 옷도 없어서 처음엔 이것도 힘들어 했다. 겨울에 옷을 어떻게(예쁘게) 껴입어야 하는 지도 모른다.
친구들은 모두 취직하고 돈 벌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학생.
이건 미국뿐만이 아니라 어디서든 대학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 같다. 나도 한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나도 공부그만하고 취업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고 멋진 삶을 꾸려나가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음식
간단하고 대표적인 한국 음식들(라면 소스 등)은 구하기 쉬운데, "맛있는" 내 음식 찾기는 정말 힘들다. 한국레스토랑이 있긴 해도 내가 기대하는 그 맛이 아니다. 특히 스페인에서 온 친구는 주변에 스페인 레스토랑도 없고 식재료도 구할 수가 없어서 많이 힘들어한다. 친구 한 명이 이런 얘기를 했다. 가족이랑 살 때는 가족이 음식을 하나 둘 씩 사오니까 냉장고에 뭐가 있나~ 하고 여는 재미가 있었는데, 여기서 혼자 살면 냉장고를 채우는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그런 소소한 행복이 없다고. 이런 사소한 일들이 정말 소중한 줄 몰랐다.
가족, 친구
가족이랑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는게 To-do 리스트를 채운다. 이게 무슨말이냐면, 한국에 살 때는 아무때나 연락하고, 아무때나 보는게 가능했는데, 여기서는 시차도 있고, 연락을 오래 안하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니까. "밤에 집에가면 이거하고 이거하고 전화해야지." 하고 꼭 해야할 일이 되어버린다. 연락하는 게 귀찮다는 게 아니라, 연락의 무게감이 달라짐을 느낄 뿐이다.
영어
한국에서 넷플로 미드를 정말 많이 봤는데, 이제 하루종일 영어를 사용하고 혼잣말이나 생각까지 영어로 하려 노력하니, 집에 오면 티비나 넷플 보기도 싫다. 지친다. 친구들이랑 영화를 보러 놀러가도, 알아듣고 이해하는 거랑 별게로 영어가 한국어만큼 편하지 않으니 기가 쪽쪽 빠진다. 지금은 많이 편해졌는데, 처음엔 친구랑 문자하거나 대화하는 것 마저 피곤했다. 매 순간 순간이 그냥 편한 대화가 아니라 배우는 중이라고 하면 되려나. 오 쟤는 저런 표현을 쓰네. 머릿속에 메모. 아침에 일어나서 밤까지 한국말 못 쓰는 영어학원에 가는 느낌이었다. +slang 까지 배워야하니까!!!!
게다가!!! 한국말을 자주 안 쓰고 영어로 뇌를 굴리다보니, 한국어 단어나 뉘앙스를 자꾸 까먹는다. 한국사람들이랑 문자할 때 아 이거 한국말로 뭐라고 하지???하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영어를 그만큼 잘하는 것도 아닌데, 한국어마저 까먹어버려서, 2개 국어가 되어야 할 판에 0개 국어가 되는 중... 지금 이 글 쓰면서도 exhausting을 표현하고 싶었는 데, 적당한 표현을 못찾았다.ㅋ
새로운 동네로 이사와서, 영어공부하고, 날씨 적응 하고, 음식 시행착오 겪고, 친구 사귀고, 학교 시스템 익히고, 공부하고, 교수님 컨택하고, TA 일 시작하고, 혼자 장 보고, 혼자 음식 차려먹고, 필요한 거(SSN발급, 차 구매, 아파트 계약 등등) 있음 혼자 인터넷에서 찾아가며 해결해야하고, 렌트비 걱정에, 코로나 걱정에,...
그나마 나는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연구실만 있다면, 환경, 계절 신경 안 쓰고 공부에 집중 할 수 있고 , 운이 좋게 여러 나라의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버겁다. 학교마다 전공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우리학교는 1학년 때 정말정말 바쁘고 수업마다 과제와 시험이 빡세다. 주말에도 오피스에 나가 공부하다 보면 내가 혼자 여유롭게 쉴 시간이 부족해서 헉.하고 숨이 막힐 때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당장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이것을 계속 할 거다. 이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힘든 일의 끝엔 보상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이 길을 선택한 만큼 끝까지 책임져서 멋지게 닥터.라고 불리는 그 날 까지, 가끔씩 울긴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약자라는 것도 아니다. 정말 포기해도 괜찮을 만큼 힘들다.
박사 유학을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건,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것 이다. 박사과정이다 보니 당연히 공부도 어렵고, 언어 문화도 다르니 친구 사귀는 것도 어렵다. 혼자 아무도 없는 타국에서 사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나도 오기 전에는, 에이 나는 뭐든 혼자 하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도 별로 신경 안쓰는데 뭐 힘들겠어~ 했는데, 이런 나도 힘들다.
주변에 박사 유학을 간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조용히 응원해주자. 그들 나름 대로 힘든 일을 겪고 있을 테니 연락 안 한다고 타박하지도 말고, 인스타에 올라오는 한 장의 사진만 보고 공부안하고 놀기만하냐~하지도 말고, 조용히 기다려주자. 그러면 언젠가 닥터 00 가 되서 돌아오겠지. 모든 박사과정생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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